이탁연님께서는 공대 출신의 디자이너를 거쳐 전산학 박사까지의 여정과 박사 유학 과정, 융합 커리어에서의 팁을 공유해주셨습니다.
안녕하세요, 이탁연입니다. 저는 과학고를 나와 미대 입시를 준비해 본 적은 없지만, KAIST에서 처음으로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. 그 후 전산학 부전공을 하고,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. 귀국 후 대학과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하였으나 만족하지 못하고, 미국 (가능하다면 실리콘 밸리)에서 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.
제 주전공은 산업디자인이지만, 학/석사과정에서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하여 메리랜드 주립대의 전산학(Computer Science) 박사를 갔습니다.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는 Human-Computer Interaction으로 연구 분야를 잡았는데, 박사과정 3년 차(2012년)에 Geoffrey E. Hinton이 CNN을 발명한 이후 인공지능이 급성장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. 곧 더 큰 기회가 있을 것 같은 Human-AI Interaction으로 연구 범위를 좁히게 되었습니다.
박사과정 동안 Microsoft, IBM Watson Research Center, Adobe Research에서 인턴을 한 뒤, 졸업 후에는 어도비의 BEL(Big-Data Experience Lab)에서 Research scientist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. 어도비에서 3년간 다양한 인공지능 기능 제품의 선행연구를 했는데, 극상의 Work-Life Balance, 연봉보다 큰 인센티브, 꾸준히 오르는 회사 주식을 보면 꿈처럼 좋은 시절이었습니다.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미국에서 남은 삶을 보내는 것과 쉽게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에 대한 고민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.
그러던 중, 운 좋게 모교인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. 인공지능이나 데이터의 중요성, 그리고 디자인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목격했거든요. 그걸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.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인공지능 경험 연구실 (AI-Experience-Lab; AEL)을 운영 중입니다.
융합이라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에요. 내 리소스가 100일 때, 두 분야를 동시에 배우면 대략 50:50으로 나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, 이는 동일 분야의 지식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효과를 무시한 단순 계산이에요. 체감상 제곱근 (예를 들어서 10:10)으로 효율이 줄어듭니다. 리소스를 분산할수록, 메인 분야에서의 내공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마련이죠. 그래서 저는 묻지 마 융합을 추천하지 않습니다.
1.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라면
내 전문 지식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접했을 때,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. 반면, 한 분야만 깊게 공부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고, 여러 분야를 건드려야 직성이 풀리는, 지적 호기심이 넘쳐흐르는 사람들도 있죠. 그런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분야도 효율성은 무시하고, 별 고민 없이 공부를 시작하죠. 융합에 적합한 게 아니라, 융합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죠.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.
2. 관심 분야와 적성이 맞는 분야가 다르다면
관심 분야와 적성 분야가 다른 경우도 있어요. 예를 들어서, 특별히 큰 노력을 안 기울이고도 코딩을 굉장히 잘하지만, 즐기진 못하는 사람들도 있죠. 그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랭귀지와 프레임워크를 공부하거나, 간단한 버그를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 건 적성에 안 맞습니다. 내가 잘하는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가 분리될 때, 융합은 좋은 해결책이 됩니다. 다만 한 분야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관심 있거나 뜨는 분야와 융합을 하면 좋겠죠. 즉, 내가 잘하는 분야가 있는데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경우, 이와 시너지가 나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는 게 좋은 전략이겠죠.
3. 주변 환경과 내 분야가 다르다면
어쩌다 보니 주변 환경이 내 분야와 다를 수 있어요. 이럴 때 일단 외로워요. 제가 전산과 박사 과정으로 갔을 때 교수들, 친구들도 다 순수 컴퓨터 사이언스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제 의견을 전달하기도 힘들고, '그게 왜 중요해'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.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극복만 하면 되게 큰 강점이 되는 것 같아요. 융합하기 최적의 환경이라는 거죠.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이 융합하게 만드는 거예요.
그래서 팁을 드리자면 그중에서도 분야가 달라도 오픈 마인드인 분이나 융합 경험자인 분들을 찾아보세요. 또, 타 분야의 실용 테크닉보다는 방법론이나 핵심이론 / 철학에 관심을 두는 것도 방법이에요.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.
4.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
마지막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지입니다. 사실 한 분야만 파서 박사 과정까지 한다고 하면 거의 세상과는 담쌓고 여기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고자 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항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. 또 그렇게만 파면 괴로울 수도 있거든요. 직장이나 교수 자리가 안 날 수도 있기에 리스크가 큰 것 같아요. 그리고 이미 뜬 분야는 굉장히 경쟁이 심하죠. 지금 인공지능 쪽으로 박사 가려고 하면 경쟁이 심하다고 하더라고요. 그렇기에 내 전공에 집중하면서 잘 나가는 분야를 살짝 끼얹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. 좋은 예시로 인공지능은 AI + X라고 자기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시너지가 날 때가 많거든요. 예를 들자면 법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ResNet 모델을 활용해서 자기 분야에서 어려운 문제를 푼다면 되게 쉽게 풀려요. 제가 최근에 했던 연구인데 쉽게 풀리고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닙니다.
첫 번째 형태가 제일 안 좋습니다. 거의 제곱근 루트로 줄어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. 내 역량과 시간이 100일 때, 두 분야를 차근차근 파고들어 가면은 50+50이 아니라 10+10이 되는 거죠.
두 번째는 대부분 사람들이 다 하는 건데 b가 메인 전공일 때 a랑 c는 수박 겉핥기만 하고, 필요한 정도만 배우는 거예요. b가 전산학이라고 보면 메인 분야니까 깊이 하고, 디자인인 a는 이미지 에디팅 할 수 있는 정도, 디자인 핑킹이 뭔지 정도만 배우고, c인 심리학도 설문조사 테크닉 정도로 가는 거죠. 이 케이스는 a랑 c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것도 괜찮아서 좋아요. 근데 이걸 융합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좀 힘든 것 같아요. 누구나 현업에서 근무하다 보면 어차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쌓는 정도의 지식이고 배우는 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거든요. 그래서 이걸 융합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.
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건 세 번째 형태에요. c랑 a가 표면부터 출발을 안 해요. 되게 깊은 데서 출발합니다. 그리고 b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줘요. 메인 분야를 파다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타 분야에서 영감을 받고 내 전공 분야를 더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줘서 시너지가 나는 거죠. 서브에서 배운 지식이 메인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융합의 진짜 바람직한 형태라고 생각을 합니다.
이 모델을 더 확장해서 보여 드릴게요. 중심에 메인 전공이 있죠. 중심으로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는 동원으로 그렸습니다.
메인 전공은 실용 테크닉부터, 방법론, 이론까지 차근차근 단계별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.
이 지표에서 핵으로 들어갈수록 더 핵심 지식이라고 말을 할게요. 당연히 제일 넓고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분야죠. 그래서 메인 전공은 실용 테크닉부터 방법론 이론까지 차근차근 단계별로 공부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.
근데 그 외의 분야 있잖아요. 주변 환경에서 많이 보이는 분야나 취미로 좋아하는 분야 등도 좋은 융합할 수 있는 분야예요. 그런 것들은 폭이 훨씬 좁기에 메인 접목처럼 넓게 하면 효율이 많이 떨어집니다. 보통 생각하기에 이 타 분야는 기초 테크닉을 배우는 게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.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, 한계에도 금방 도달하고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많거든요. 이런 것들은 아웃소싱 하면 돼요. 도움 청할 수도 있고요.
서브 전공에서 단계별로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.
이럴 때 올라가다가 계속 미끄러지고 모래 성처럼 무너지기 쉽습니다. 또 핵심 이론이랑 철학/역사 레벨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전공 간 차이가 크게 줄어들어요. 쉬운 거에서는 전공과 차이가 심해요. 근데 그 분야에서 위로 올라가서 뿌리까지 들어가면 다른 분야랑 크게 다르지가 않거든요.
인문학, 특히 역사와 철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는 것이 융합을 수월하게 만들어준다.
역사나 철학까지 갔을 때 대부분 분야가 교차하기 때문에 표면 레벨보다 심층부에서 융합하는 게 말이 더 잘 돼요. 그래서 메인 전공을 파다가도 역사나 철학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, 내 메인 전공이 어떤 역사나 철학적 배경이 있을까? 동시에 공유하는 다른 분야는 어떤 것일까? 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거기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면 융합을 훨씬 더 쉽게 만들어주거든요.
한 가지 예로, 제 메인 전공이 디자인인데 디자인에서 쭉 들어가면 구조주의 현상학 등의 철학적인 부분도 있어요. 또, 건축이랑도 교육학도 관련이 있고 컴퓨터 사이언스도 당연히 있겠죠. 그러면은 실무적인 부분은 연관이 없는데 이론은 다 맞아요. 그러므로 위로 올라갈수록 겹치는 부분도 많고 다른 분야의 지식이나 이론들이 내 분야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.
융합도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.
분야가 늘어날수록 차원이 넓어지고, 이를 채우기는 어려워집니다. 그 공간에서 데이터 포인트들이 생겨나더라도 서로 연관 지을 수 있는 게 굉장히 힘들어져요. 요새 그런 얘기도 많이 해요. ‘새로운 분야 지식을 배우고 싶으면 유튜브 검색해라 유튜브에 다 올라와 있다.’ 실제로 보면 다 올라와 있어요. 쉽게 배울 수는 있지만 한 분야에 집중하기는 또 힘들어요. 또,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데 하나로 합치지 못하는 거예요. 이를 경쟁력 있는 내 것으로 융합을 시키려면 고온 고압을 가해서 차원을 줄여야 해요.
여러 분야를 배워서 나만의 프로세스를 정립하세요.
자기의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정리돼야 진정한 융합이라고 할 수 있죠. 제가 학부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이 느끼는 건데 한 3분의 2 정도가 주전공/부전공으로 여러 가지 전공을 공부해요. 근데 이 내용을 따로따로 쓰지 합쳐서 시너지 효과를 보기는 참 힘들더라고요. 그걸 보면서 양쪽 분야를 따로따로 배우는 거지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건 아니구나를 느꼈어요. 그래서 이를 도울 수 있는 프로세스와 기회, 과정을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. 각 분야만 따로 공부하면 효율은 떨어지고, 주 분야의 경쟁력은 점점 낮아지거든요. 그렇기에 나만의 프로세스로 정립해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가 그 고민은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죠.
왜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. 특정 분야가 사람을 많이 만나서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그 분야의 특정 경험이나 문제를 푸는 방식이 좋을 수도 있는데 그 이유를 본인이 클리어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다른 분야를 찾기도 쉽고, 내가 좋아하는 부분에만 집중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. 결국, 자기 자신의 성향이나 취향에 대해서 더 잘 알자 그런 것이고요.
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내가 안 싫어하는 부분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.
현업에서 일하다 보면 이게 더 중요할 때도 잦아요.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다 좋아하기가 쉽거든요. 그만큼 레드오션이 되기도 쉬워요. 근데 남들은 싫어하는데 나는 덜 싫어하는 거는 괜찮아요. 저 같은 경우엔 박사 과정을 할 때 TA라고 하는 수업 조교를 했어요. 일주일에 4시간 정도씩 오피스 아워에 학부생들이 맨날 똑같은 질문하는 걸 답해주는 건데 보통 친구들은 정말 싫어해요. 근데 저는 재밌더라고요. 학생들이랑 얘기하면서 왜 이거를 이해 못 할까, 이해를 더 쉽게 하려면 메테리얼을 만들어줘야 할까 생각하는 과정이 재밌었어요. 물론 저도 엄청나게 좋았던 건 아니고, 벗어나니까 좋더라고요.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그렇게 싫진 않았기 때문에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택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.
융합이 있기 전에 제가 공부를 할 때만 해도 학과 간 구분이 되게 뚜렷했거든요. 그리고 융합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다가 갑자기 전산을 한다고 하면 왜 굳이? 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. 가지 말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었고요. 물론 지금도 명확하지 않고, 교수님들도 모르기 때문에 도전하는 영역이에요. 현재 사회가 급변하는 만큼 체계 자체가 유동적이기에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.
고객센터
02-6204-8880
평일 오전 10:00 - 오후 6:00(KST)
점심시간: 오후 1:00 - 오후 2:00(KST)